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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도심을 횡단하여 달리는 1187번 버스는 무등산이 품고 있는 넉넉한 포용력을 축소해 놓은 작은 소우주와 같다. 주말 아침 이 버스에 오르면 몹시 흥미로운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화려한 기능성 등산복과 스틱으로 중무장한 중장년의 베테랑 등산객들 사이로, 가벼운 옷차림에 에코백을 멘 젊은 세대들이 아무런 이질감 없이 섞여 앉아 있다. 버스의 최종 목적지는 무등산으로 같지만, 저마다 이 거대한 자연을 소비하고 즐기는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암시하는 풍경이다. 회색빛 빌딩 숲과 번잡하고 매연 가득한 교차로를 지나온 버스가 이윽고 굽이진 산장 길에 접어들면, 차창 밖으로는 짙푸른 녹음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승객들의 얼굴에는 서서히 도시의 긴장이 허물어지는 여유가 번져간다. 단돈 천몇백 원 남짓한 요금으로, 140만 인구가 부대끼는 거대 메트로폴리스 한가운데서 완벽한 원시의 대자연으로 이동하는 이 마법 같은 ‘수직 엘리베이터’의 문이 곧 열릴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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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구불구불한 숲길을 한참 올라 종점인 ‘무등산국립공원(원효사) 정류장’에 도착해 마침내 차문이 열리는 순간, 훅 하고 밀려드는 공기의 질감부터가 저 아래 도심과는 확연하게, 그리고 극적으로 다르다. 초여름의 뜨거운 복사열을 가득 머금고 있던 아스팔트의 훅훅한 공기와 숨 막히는 습도는 온데간데없다. 대신, 수천수만 그루의 나무들이 뿜어내는 서늘하고 청량한 피톤치드 향이 폐부 깊숙이 날카롭게 스며든다. 불과 30여 분 전까지 에어컨 실외기가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삭막한 콘크리트 숲에 있었다는 사실이 아득한 전생의 일처럼 느껴질 정도다. 가벼운 샌들 차림으로 버스에 오른 젊은 세대들의 첫 번째 목적지는 무거운 배낭을 멘 채 땀을 뻘뻘 흘리며 정상을 향해 오르지 않아도 기꺼이 만날 수 있는 그곳, 바로 ‘원효사 계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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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의 무등산 계곡은 도시인들에게 허락된 가장 완벽하고도 손쉬운 피난처다. 정류장에서 불과 몇 걸음만 걸어 내려가면 닿는 원효사 계곡에 들어서면, 머리 위로는 울창한 나뭇잎들이 겹겹이 얽혀 완벽한 천연의 그늘막을 만들어낸다. 그 초록의 틈새로 부서져 내리는 햇살을 바라보며 평평한 바위에 걸터앉아 보자. 그리고 신발을 벗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그는 이른바 ‘탁족(濯足)’의 순간을 맞이해 보라. 찌는 듯한 도심의 더위와 발끝에 맺혀 있던 일상의 피로가 그 차가운 물살을 따라 단숨에 씻겨 내려가는 짜릿함을 경험할 수 있다. 인공적인 에어컨 바람과는 차원이 다른, 뼛속까지 스며드는 자연의 냉기다. 귓가를 둥둥 채우는 경쾌한 계곡 물소리를 백색소음 삼아 물끄러미 수면을 바라보는 ‘물멍’의 시간을 10분만 가져도 좋다. 굳이 무언가를 성취하려 애쓰지 않고, 땀 흘려 정상을 정복해야 한다는 강박도 없이, 그저 자연의 품에 안겨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만끽하기에 이만한 도심 속 힐링 피서지가 또 있을까.
하지만 1187번 버스가 던지는 진짜 매혹적인 초대장은 계곡의 시원한 물소리 너머, 더 높은 숲길 끝에 숨어 있다. 원효사 삼거리에서 시작해 본격적으로 등산화 끈을 단단히 조여 매고 산길을 오르다 보면, 무등산이 장엄한 지질학적 박물관임을 온몸으로 증명해 낸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고도를 높여 숲의 한계선을 벗어나는 순간, 시야를 가로막던 나무들이 일제히 사라지고 가슴이 뻥 뚫리는 광활한 고개, ‘장불재’가 여행자를 맞이한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식혀주는 시원한 산바람을 맞으며 올려다보는 탁 트인 풍경은, 그간의 수고로움을 단숨에 보상해 주고도 남는 시각적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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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해발 1,000m 부근에서 거대한 위용을 드러내는 ‘입석대’와 ‘서석대’ 앞에 서면, 인간이라는 존재의 미약함과 자연의 경이로움 앞에 절로 숨을 죽이게 된다. 마치 신이 정교하게 조각해 세워둔 듯한 거대한 돌기둥들의 무리, ‘주상절리대’다. 약 8,500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의 맹렬했던 화산 활동으로 용암이 냉각되고 수축하면서 만들어진 이 거대한 육각형의 돌기둥들은, 영겁의 시간을 묵묵히 견디며 광주 시내를 굽어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이 대도시 곁에 이토록 가깝게 존재하는 경우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 서석대에 올라 발아래로 까마득하게 펼쳐진 광주 시내의 미니어처 같은 빌딩들을 내려다보노라면, 1분 1초에 일희일비하며 아등바등 살아가는 우리의 팍팍한 일상이 8,500만 년이라는 압도적인 지질학적 시간 앞에서는 얼마나 찰나의 티끌 같은 순간인지 깨닫게 된다. 그 거대한 스케일의 차이에서 오는 기묘한 안도감과 해방감, 그것이 바로 무등산이 땀 흘린 여행자에게 건네는 최고의 위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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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주말, 복잡한 생각과 사무실 책상 위에 쌓인 일들은 잠시 덮어두고 광주 시내버스 1187번에 훌쩍 몸을 실어보는 건 어떨까. 거창한 등산 계획이나 무거운 배낭이 없어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완벽한 ‘물멍’과 탁족을 즐길 가벼운 샌들 하나, 혹은 서석대의 압도적인 절경을 배경으로 멋진 등산 인증샷을 남길 등산화 하나면 그만이니까. 에어컨 바람에 지친 몸을 이끌고 이 특별한 번호의 시내버스에 오르는 순간, 해발 1,187m의 서늘한 구름 위로 우리의 일상을 단숨에 밀어 올려줄 마법 같은 ‘수직 캡슐’에 탑승한 것이다. 짙푸른 녹음이 두 팔 벌려 기다리고 있는 초여름의 무등산으로, 지금 당장 출발해 보자.
/조영권 기자
정지효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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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5 (목) 13: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