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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진짜 숲으로 데려다줄 충효187번 버스로 환승하는 일은 생각보다 수월하다. 도심 전역을 부지런히 순환하는 ‘순환01번’이나 광주송정역에서 출발해 도심을 횡단하는 ‘좌석02번’, 혹은 지하철 1호선에 몸을 싣고 문화전당역 같은 도심의 굵직한 거점에 내리기만 하면 된다. 익숙한 노선에서 하차해 이 초록색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은 단순한 대기가 아니다. 그것은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던 효율성의 세계에서 자발적으로 빠져나와, 자연의 느리고 웅장한 박자 속으로 걸어 들어가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마침내 멀리서 둥근 헤드라이트를 빛내며 다가오는 버스에 몸을 싣는 순간, 우리가 속해 있던 시공간의 질감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뒤바뀌기 시작한다.
충효187번 버스는 광주의 도심 속을 달려, 무등산 자락의 굽이진 도로를 향해 유유히 뱃머리를 돌린다. 복잡한 도심의 경계를 넘어서는 찰나, 창밖의 풍경은 마치 영화의 컷 전환처럼 극적으로 변모한다. 빽빽하게 솟아 있던 무채색의 빌딩 숲이 물러난 자리를, 여름의 절정을 맞이한 짙푸른 녹음이 빠르게 채워나간다. 고도가 서서히 높아질수록 귓가를 때리던 날카로운 도시의 백색소음은 멀어지고, 열린 창문 틈새로 스며드는 공기의 미세한 온도 차이가 고스란히 피부에 닿는다. 아스팔트가 뿜어내던 매캐한 열기 대신, 비를 듬뿍 머금은 젖은 흙내음과 나뭇잎의 쌉싸름한 향기가 버스 안으로 훅 밀려 들어온다. 이 극적인 감각의 전환은 우리가 지금 완전히 다른 세계로 진입하고 있음을 알리는 명확한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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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점에 다다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 광주호 호수생태원이 그 너른 품을 벌리고 여행자를 맞이한다. 광주호는 본래 1970년대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계곡을 막아 만든 인공 구조물이었다. 2006년 생태원으로 처음 개장할 당시만 해도 훼손된 생태계 탓에 스피커로 가짜 새소리를 틀어야 했던 촌극도 있었지만, 20년이 흐른 지금 이곳은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고 완벽한 야생의 요람으로 부활했다.
생태원의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시선을 압도하는 것은 수백 년의 비바람을 묵묵히 견뎌낸 천연기념물, 충효동 왕버들 군락이다. 성인 여러 명이 안아도 모자랄 만큼 굵고 기괴하게 뒤틀린 줄기들은 마치 이 거대한 숲을 지키는 오랜 정령처럼 늠름하고 신비롭다. 그 웅장한 나무 그늘 아래로 걸어 들어가는 순간, 도심의 기계적인 차가움과는 결이 다른 묵직하고 서늘한 청량감이 전신을 감싼다. 왕버들의 환영을 뒤로하고 생태원 안으로 깊숙이 걸음을 옮기면, 나무 데크로 정교하게 짜인 길들이 광활한 습지와 호수 위를 미끄러지듯 이어진다. 풀피리길, 버들길, 돌밑길로 다정하게 명명된 산책로를 천천히 걷다 보면, 이곳이 왜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훌륭한 안식처인지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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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을 흠뻑 머금은 짙은 녹음은 그 자체로 완벽한 배경이 되어 눈부신 청춘의 순간을 기록하고,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에게는 스마트폰의 매끄러운 액정 밖, 펄떡이는 현실을 마주하는 거대한 생태 탐험지가 돼 준다. 발밑 습지에서 꼼지락거리는 작은 생명체들과 공기를 가르며 날아오르는 물새들을 관찰하며 터뜨리는 아이들의 맑은 탄성은,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숲의 정적을 기분 좋게 울린다. 오랜 세월을 함께 나이 들어가는 친구나 부부라면 굳이 많은 말을 꺼내지 않아도 좋다. 산책로 곳곳에 놓인 나무 벤치에 나란히 앉아, 호수 너머로 길게 뻗은 무등산의 부드러운 능선을 가만히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지난 계절의 눅눅한 피로가 말끔히 씻겨 내려가는 듯한 위안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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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지역에서 찾아온 관광객들 역시 이 공간에서 신선한 감동을 받는다. 그저 미식과 근현대사의 중심지로만 알았던 광주 도심 한가운데서, 시내버스로 이토록 원시적이고 웅장한 생태계에 곧바로 닿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도시의 편리한 대중교통 인프라와 날것의 거대한 자연이 이토록 매끄럽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것은 이 지역이 품고 있는 매우 세련되고 강력한 저력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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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에서는 1분 1초를 아끼며 걸음을 재촉하던 우리도, 이 넉넉한 공간에 들어서면 자연스레 발걸음의 속도를 늦추게 된다. 빠른 속도에 길들여진 도시의 리듬을 훌훌 벗어버리고 자연의 박자에 몸을 맡기면, 비로소 작고 미세한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메타세쿼이아 잎사귀의 바스락거림, 수면 위로 빛의 조각들이 부서지며 만들어내는 눈부신 윤슬, 이름 모를 곤충들이 수면을 차고 오르는 희미한 파동. 이 모든 것들이 뻣뻣하게 굳어 있던 우리의 감각을 섬세하게 어루만진다. 맹목적으로 목적지를 향해 돌진하는 것이 아니라, 걷는 행위 그 자체에서 깊은 기쁨을 얻는 것. 그것이 도심 속 산책이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큰 위로다.
데크 산책로가 끝나는 지점, 수면이 가장 넓고 시원하게 열리는 전망대에 서서 호수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한다. 머리 위로는 여전히 늦여름의 집요한 태양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지만, 수면을 스치고 불어오는 눅눅하고 달큰한 바람 속에는 이미 계절의 경계를 넘어서는 선선한 기운이 옅게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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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 나무 벤치에 기대앉아, 이마에 달라붙은 젖은 앞머리를 쓱 쓸어 올린다. 꽤 오래 걸은 탓에 종아리는 기분 좋게 뻐근하지만, 아침 내내 안개 낀 듯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머릿속은 두꺼운 유리창을 막 닦아낸 것처럼 맑고 투명해졌다. 저 멀리 굽이진 도로 모퉁이를 돌아, 둥근 헤드라이트를 노랗게 깜빡이며 다가오는 저녁 무렵의 시내버스가 마치 오랜 지기처럼 반갑게 손을 흔드는 것 같다. 흔들리는 창가 자리에 푹 기대어 앉아, 오늘 숲에서 주워 담은 짙은 초록빛의 서늘한 기억들을 머릿속으로 하나씩 꺼내어 본다. 이대로 집에 도착해서 시원하게 샤워를 마치고 방의 창문을 활짝 열어두면, 숲에서 옷깃에 묻혀 온 바람이 오늘 밤을 아주 근사하고 다정하게 만들어줄 게 분명하다.
정지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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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5 (목) 14: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