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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는 도시가 품은 가장 깊숙하고 다정한 휴식처, 무등산 자락의 지산유원지다. 평범한 일상의 풍경에서 출발한 버스는 굽이굽이 도심을 가로지르며 점차 풍경의 채도를 바꿔 나간다. 버스 창문 밖으로 펼쳐지는 모습은 훌륭한 로드 무비의 도입부와도 같다. 바쁘게 걷는 사람들의 활기찬 일상과 도심의 빌딩 숲을 지나, 무등산 초입에 다다를 무렵이면 차창 밖은 어느새 짙고 푸른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하다. 열린 창문 틈으로 밀려 들어오는 공기의 밀도마저 도심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산이 내어주는 맑은 숨결이 버스 안으로 훅 끼쳐 들어올 때, 승객들의 얼굴에도 옅은 안도감이 번진다.
버스가 지산유원지입구 정류장에 다다랐을 때 하차하여 가장 먼저 발걸음을 향한 곳은 산의 초입에 둥지를 튼 무등산 보리밥 거리다. 진정한 여행이란 단순히 낯선 풍경을 눈에 담는 시각적 경험을 넘어, 미각을 통해 그 지역의 켜켜이 쌓인 역사와 삶의 양식을 온몸으로 기억하는 행위다. 오랫동안 광주 시민들의 소박한 소울푸드이자 남도의 풍요로움이 집약된 무등산 보리밥은 단순한 한 끼 식사가 아니다. 커다랗고 둥근 쟁반 위에 열 가지가 훌쩍 넘는 다채로운 제철 나물들이 마치 하나의 훌륭한 만다라처럼 정갈하게 둘러싸여 나오는 모습은, 남도의 산과 들이 내어준 억센 생명력을 축소해 놓은 작은 우주와 같다. 고슬고슬하게 지어진 보리밥 위에 취나물, 콩나물, 무생채 등 갖은 나물을 듬뿍 얹고, 오랜 시간 숙성된 고추장과 짙은 풍미의 참기름을 두른 뒤 숟가락으로 쓱쓱 비벼낸다. 크게 한입 베어 물면 늦여름 무등산이 품고 있는 건강하고 눅진한 에너지가 입안 가득 묵직하게 퍼지며, 비로소 내가 남도의 깊은 품속에 들어와 있음을 온전히 실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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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스러운 식사 후에는 숲의 윤곽을 따라 걷다 자연스럽게 지산유원지 주변으로 자생하듯 피어난 개성 있는 로스터리 카페 거리로 향한다. 남도의 깊은 맛은 비단 오랜 세월을 견뎌온 전통 음식에만 머물지 않는다. 지산유원지 자락에서는 장인 정신으로 무장한 스페셜티 커피들이 새로운 로컬 문화를 묵묵히 견인하고 있다. 세월의 두께가 느껴지는 노포 식당들 사이사이에 보석처럼 숨어 있는 로스터리들은 저마다의 확고한 철학을 생두 속에 불어넣는다. 묵묵히 원두를 볶아내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한 잔의 커피에 오롯이 담아내는 풍경은, 전통의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트렌드를 유연하게 융합해 내는 광주의 다채로운 문화적 토양을 그대로 빼닮았다. 쌉싸름하면서도 기분 좋은 과일 향의 산미가 감도는 커피 한 잔으로 입안을 깔끔하게 정돈하고 나면, 늦여름의 무등산이 한층 더 맑고 투명하게 다가온다.
커피 향의 여운을 안고 발걸음을 옮기면, 지산유원지의 진정한 묘미이자 상징인 리프트와 모노레일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안전바에 온몸을 의지한 채 산 중턱을 향해 천천히 솟아오르는 리프트에 앉으면, 발밑으로 스쳐 지나가는 나뭇잎들의 사각거리는 소리와 코끝을 간지럽히는 풋풋한 흙내음이 아무런 여과 없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두 발이 안전한 땅에서 떨어져 허공을 가르는 그 짧은 순간, 우리는 일상의 무거운 중력과 복잡한 번뇌로부터 아주 조금 멀어지는 묘한 해방감을 맛본다.
리프트에서 내려 울창한 숲길을 조금 더 걸어 올라가면 마침내 기다리던 모노레일 승강장이 나타난다. 이 모노레일은 흔히 연상시키는 매끄럽고 빠른 최첨단의 놀이기구가 아니다. 오히려 세월의 다정한 손때가 구석구석 묻어나 더욱 정겨운, 그래서 더 깊은 매력을 발산하는 레트로 감성의 정수다. 약간의 삐걱거림과 함께 천천히 허공을 가르며 나아가는 옛 모노레일에 몸을 싣고 있으면, 마치 시간이 1990년대 어느 찬란했던 시절에 다정하게 멈춰버린 듯한 강렬한 노스탤지어에 사로잡힌다. 우리는 왜 이토록 옛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위안을 얻는가? 그것은 아마도 모든 것이 너무나 빠르고 불확실하게 변해가는 현대 사회 속에서, 오랜 시간 변하지 않고 묵묵히 제 자리를 지켜온 것들이 주는 특유의 단단한 안도감 때문일 것이다. 조금 느리고 덜컹거려도 흔들림 없이 묵묵히 산등성이를 나아가는 아날로그적인 기계 위에서, 여행자는 잊고 지냈던 삶의 여유와 묘한 위로를 동시에 건네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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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레일의 종착지인 팔각정에 오르면, 짧은 도심 여행의 찬란한 하이라이트가 마침내 그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늦여름의 짙은 녹음과 다가오는 가을의 투명한 공기가 기분 좋게 뒤섞인 무등산의 넉넉한 품에서 시선을 아래로 던진다. 발아래로는 저마다의 삶을 일구며 살아가는 광주 시내의 장대한 파노라마가 한눈에 들어온다. 조금 전까지 내가 땀 흘려 걷고 치열하게 호흡하던 그 복잡하고 치열한 도시가, 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정교하게 만들어진 고요한 미니어처처럼 한없이 평화롭게만 보인다. 일상의 한가운데서 잠시 한 걸음 물러나, 나의 삶과 내가 속한 도시를 이토록 객관적이고 너그러운 시선으로 관망하게 만드는 힘. 이것이 바로 지산유원지 팔각정이 우리에게 내어주는 가장 크고 다정한 마법이자, 우리가 기꺼이 낯선 곳으로 향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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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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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01 (목) 2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