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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라는 단어는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속절없이 흔들어 놓는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에메랄드빛 바다나 울창한 숲이 품고 있는 깊고 서늘한 계곡의 이미지가 머릿속을 둥둥 떠다닌다.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의 일상 속에서 며칠씩 무거운 짐을 싸서 멀리 떠나는 장기 휴가는 누구에게나 쉽게 허락되는 호사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눈부시게 빛나는 우리의 여름을 에어컨 실외기가 윙윙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이대로 흘려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행은 때로 지갑 속에 든 얇은 교통카드 한 장과 오늘 하루를 온전히 누려보겠다는 헐렁한 마음가짐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가 그저 지루한 일상이라 부르며 무심히 지나치던 이 도시의 공간에 살짝 낯선 여행자의 시선을 던지는 순간, 매일 걷던 익숙한 출퇴근길은 곧바로 근사하고 새로운 미지의 여행지로 탈바꿈한다. 도시의 열기가 서서히 달아오르는 요즘, 지금 당장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훌쩍 올라타야 할 버스가 있다. 광주의 북쪽 끝자락에서 출발해 남쪽 끝으로 향하며, 다채로운 도시의 표정을 마치 유람선처럼 유유히 가로지르는 ‘금호46번’ 버스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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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46번 버스 여행의 출발점이 ‘국립광주과학관’이라는 점은 의외의 근사함을 더해준다. 본격적인 불볕더위가 시작되기 전, 땡볕 아래를 정처 없이 걷기 전에 과학관의 웅장한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자. 쾌적한 에어컨 바람이 선사하는 서늘함 속에서 먼저 우주와 과학의 신비로운 세계를 유영하며 시원하게 몸과 마음을 식힐 수 있기 때문이다. 방학을 맞아 호기심 어린 눈을 반짝이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이나, 여유로운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의 들뜬 발걸음과 함께 여행의 첫 단추를 경쾌하게 채우기에 이보다 더 완벽한 실내 여행지는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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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관을 빠져나와 본격적인 주행을 시작한 버스는 이내 광주의 주요 생활권인 첨단지구를 거쳐 수완, 운남, 월곡동으로 미끄러지듯 진입한다. 빼곡하게 늘어선 아파트 단지, 상인들의 활기찬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시끌벅적한 시장,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하하 호호 쏟아져 나오는 교복 입은 학생들, 그리고 행정복지센터 앞을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광주 시민들의 지극히 보편적이고 펄떡이는 일상이 차창 밖으로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 도시 여행의 진짜 묘미는 유명한 랜드마크 앞에서 서둘러 인증 사진을 남기는 것에만 있지 않다.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네의 결을 가만히 읽어내고, 그들의 활기찬 여름날을 따뜻한 시선으로 관찰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일상을 여행으로 만드는 진짜 여행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상무지구의 빌딩 숲을 빠져나온 버스가 마침내 ‘운천저수지’ 정류장에 도착하면, 이번 버스 유람의 눈부신 클라이맥스가 눈앞에 펼쳐진다. 하차 벨을 누르고 자리에서 일어나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댄 후 버스 계단을 내려오는 바로 그 순간, 등 뒤로 잿빛 도시의 소음은 닫히고 눈앞에는 마법처럼 싱그러운 초록의 물빛 세상이 열린다.
운천저수지는 1956년에 만들어졌다. 메마른 농경지를 적시기 위한 농업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운천저수지는 1990년대 중반 이후 도시가 급격히 팽창하고 주변이 개발되면서, 시민들의 곁을 든든하게 지키는 도심 속 생태공원으로 기분 좋게 진화했다. 물가를 따라 부드럽게 이어지는 약 500m의 수변 산책로와 물 위를 걷는 듯한 나무 데크 위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등 뒤 상무대로에서 요란하게 울려대던 자동차의 클락션 소리는 어느새 아득한 배경음악으로 물러난다. 그 자리를 대신 채우는 것은 수면을 스치고 불어오는 바람, 그리고 그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사각거리는 버드나무 잎사귀들의 기분 좋은 합창이다.
무엇보다 운천저수지가 품은 여름의 풍경은 가슴이 벅차오를 만큼 압도적으로 아름답다. 탁한 진흙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피어난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맑고 고결하며 우아한 자태의 연꽃들이 거대한 수면을 빼곡하게 수놓고 있기 때문이다. 운천저수지의 여름은 결코 빠르지도, 요란하게 서두르지도 않는다. 우산만큼이나 커다랗고 짙푸른 연잎들이 수면 위로 융단처럼 펼쳐져 있고, 그 넓은 잎사귀 위로 굴러떨어진 투명한 물방울들은 아침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인다.
푸른 연잎 바다 사이사이로 수줍은 듯, 그러나 당당하게 얼굴을 밀어 올린 연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붉은빛을 머금은 화려한 홍련과 눈이 시리도록 하얀 순백의 백련이 저마다의 색채를 뽐내며 방문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연꽃이 피어난 풍경은 그 자체로 한 폭의 거대한 수채화다. 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은 흡사 도시의 조급한 속도와 맹렬한 경쟁을 잠시 내려놓고 쉬어가라는 듯, 아주 느리고 부드러운 템포로 일렁인다.
나무 데크를 따라 저수지 중앙에 자리한 섬과 정자로 걸어 들어가는 길은 마치 비밀의 화원으로 들어가는 관문 같다. 그곳에서는 커다란 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로 연꽃의 개화를 숨죽여 담아내는 사진가들, 두 손을 꼭 잡고 느릿느릿 산책을 즐기는 노부부, 연잎 사이를 유유히 헤엄치는 오리 떼를 보며 환호성을 지르는 아이들의 평화로운 미소를 마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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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짙은 연꽃의 향연 앞에서는 굳이 몇 시간을 운전해 외곽으로 멀리 떠나지 않아도, 시내버스 요금 한 번만으로 이렇게 황홀하고 고요한 여름의 진짜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에 깊은 안도감과 감사함마저 밀려든다. 산책로를 따라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내는 분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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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 창밖의 태양이 아무리 뜨겁게 작열하더라도 에어컨 앞에서 리모컨만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내지 않기를 바란다. 편안한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지갑 하나만 가볍게 챙겨 밖으로 나서보자. 광주 금호46번 버스에 올라타는 순간, 뻔하고 지루했던 당신의 일상은 이미 연꽃 향기 가득한 찬란한 휴가로 변해있을 것이다.
정지효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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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5 (목) 1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