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작가들이 여성을 다룬 전시회를 보고 왔다. 여성의 시각으로 여성의 정체성을 다룬 작품들 앞에서 진득한 감동이 일었다. 그동안 느끼고 절감했던 여성문제를 이렇게 조형적으로 이끌어내는 작가들에게 존경심이 생겨나며 생각의 고리로 빠져들었다. 자원봉사로 도슨트를 하고 있는 딸의 권유로 보게 된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접속하는 몸: 아시아 여성 미술가들’ 전시였다. 이 전시는 1960년대 이후 아시아 여성 미술의 동시대적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며, 단순히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다양한 이데올로기와 상황이 교차하…2025-02-27 19:42

여성의 몸은 여성 자신의 것이다. 자신의 신체에 대해 자유롭고 책임감있게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른바 재생산권(Reproductive Rights)이다. 몸의 생식과 관련된 권리에는 임신, 출산, 피임, 낙태 등이 있다. 여성은 임신, 출산에 대한 선택권을 가질 뿐만 아니라 안전하고 효과적인 피임방법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받아야 하며 원치 않는 임신 시에는 안전한 낙태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여성의 재생산권에 대한 개념이 우리나라에서는 2016년 낙태죄 폐지운동과 함께 포괄적 재생산권 보장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했…2025-02-20 18:29

밤새 휘몰아치는 바람에 날리는 눈발이 세상을 하얗게 덮어 놓았다. 정적과 고요함이 주는 침묵 속에서 마치 무언가를 외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새벽녘, 다가오는 자연의 섭리 속에서 신성함과 소중함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폭설에 갇혀 눈이 녹을 때까지 마을에 고립될 것이다. 이런 고립이 주는 즐거움이야말로 겨울의 묘미다. 시골에 살다보니 겨울이 그렇게 좋다. 겨울은 침묵 속에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봄을 기다리는 계절이다. 안으로 여무는 시기이며, 몸을 단련하고 내적으로 마음을 다지는 시간이다. 그래서 겨우 살아내라고…2025-02-13 18:40

“한국은 참 좋은 나라인 것 같아요. 엄마 고향에서는 아이들이 맞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잘 챙겨주지도 않는다고 했어요. 한국은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도와주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서 좋아요.” 얼마 전 만났던 학대피해아동이 했던 말이다. 부모가 외국 출신인 이주배경가정의 아동이었다. 이러한 가정을 ‘다문화 가정’이라고 이름지었지만 최근에는 ‘이주배경’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단순한 용어 변화가 아니다. 이주배경 아동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과 지원 방식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이주배경 아동이…2025-02-06 18:21

얼마 전, KBS 아침마당에서 박상철 전남대 석좌교수가 출연해서 어머니와의 사연을 이야기했다. 박 교수가 70세 무렵 무슨 말 끝에 나이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 때 어머니 말씀이 “70이 나이다냐? 난 그 나이에 날아다녔어야” 하셨단다. 그 말에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단순히 웃어넘길 수 없었다. 박 교수의 어머니 말씀은 백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메타포가 아닐까.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있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노년=은퇴’라는 고정관념에 갇혀 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노년은 더 이상 인생의 마무리가 아니…2025-02-03 19:33

최근 출생아 수가 다소 증가했다. 지난 해 주민등록 인구통계를 보면 출생아는 24만2천334명으로 2023년 출생아 23만28명(합계 출산율 0.72명)보다 증가했다. 감소추세를 보인 출산율이 8년 만에 반등한 것이다. 그럼에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합계 출산율이 1명을 밑도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OECD 평균 1.51명의 절반 수준이다. 결혼을 늦게 하는 추세이기도 하지만 결혼을 한다고 해도 출산을 꺼리고 늦추는 경향 때문이다. 2023년 8월 통계청의 ‘사회조사로 살펴본 청년의 의식변화’에 따르면 결혼 후 출…2025-01-23 18:11

누구일까. 역사를 바꾼 이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지난 역사는 말하고 있다. 결코 권력의 중심부가 아니었다. 프랑스대혁명, 5·18민주화운동, 그리고 얼마 전 구랍 12월3일 이후 광화문과 금남로에서 울려 퍼진 목소리가 그 증거다. 지난해 12월3일 밤, 교육지원청에서는 연말 결산과 새해 계획을 준비하며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난데없이 계엄령 선포 소식을 전해들었다. 수석장학사의 말을 듣고 모두가 놀란 가운데 TV를 켰다. 국격이 무너지는 광경이 벌어졌다. 무슨 이런 일이 있을까, 이게 사실일까 하며 눈을 비비…2025-01-16 18:33

파란만장한 갑자년이 지나갔다. 일 년 전 2024년 새해를 맞이하며 다짐했던 순간들이 이제와 돌이켜보면 찰나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시간은 빠르다. 즐거웠던 일들, 가혹한 시간들도 지나고 나면 훗날에는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될 뿐이다. 그렇지만 한 개인이나 지역, 국가는 순간순간 부여해주는 모든 시간들에 진실되고 현명한 지혜로 임해야 한다. 그러한 시간들이 모여 아름다운 역사로 기록되기 때문이다. 2024 갑자년 푸른 용과 2025 을사년의 푸른 뱀은 색채 중에서 가장 영적이고 지혜를 상징하는 푸름의 연결이다. 필자처…2025-01-09 19:10

“이젠 괜찮아, ‘걱정 인형’이 가져갔거든.” 옛 마야 문명의 발상지인 중부 아메리카의 과테말라에서 전해오는 ‘걱정 인형’은, 부모가 걱정하는 아이에게 선물로 줬던 것에서 유래한단다. 작은 나무와 헝겊 조각으로 만든 조그맣고 볼품도 별로 없는 걱정 인형에게 속상하고 걱정되는 일들을 이야기하게 한 다음, 베개 밑에 넣어 두고 잠자리에 들게 한단다. 그러고선 아이가 새근새근 잠이 들면 베개 밑에 넣어둔 걱정 인형을 살며시 빼내어 치우는 방법이다. 아침이 되어 잠에서 깨어난 아이는 베개 밑에 넣어 두었던 걱정 인형…2025-01-02 19:23

곧 새로운 한해가 시작된다. 아쉬움과 설레는 마음으로 새해를 준비한다. 청소년기에는 배우면서 꿈을 꾸는 시기다. 결혼해서는 자식들을 키우고 가족을 이끌기 위해서 산다. 수십 년을 절약하며 집 한 채 마련하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퇴직을 하고서 자식들이 결혼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를 위한 인생이 시작됐다. 이순에 이르러 나를 위해서 살아도 되는 시기가 됐다. 대학 1학년 때 비상계엄과 1980년 5·18 비상계엄을 경험했다. 그리고 지난 3일에 또 상상도 못한 비상계엄을 다시 겪게 됐다. 길 위에 쏟아져 나온 시민들의 강인한…2024-12-26 18:19

얼마 전 떠들썩하게 했던 소식 하나, 모델 문가비가 톱스타 정우성의 아들을 낳았다고 밝혔다. 정우성은 자신이 아버지임을 인정하며 책임지겠다고 했다. 그러나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방송인 사유리도 자발적 비혼모가 된 사례다 그녀는 정자 기증을 통해 아이를 출산했다. 이들은 모두 기존의 결혼 제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부모가 됐다. 이처럼 비혼출산부모가 되기를 원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같은 사례는 요즘 우리의 결혼관이 크게 변화됐음을 알리는 증표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사회조사와…2024-12-19 19:13

“니 장미를 그르케 특벨허게 맨들어 준 건 니가 니 장미헌티 들인 시간이여.” “넌 이거 까먹어 버림 못 쓴다잉. 니가 질들인 거엔 항시로 책임을 져야 되는 벱이여. 넌 니 장미를 책임져야 된다 그 말이여….”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에게 삶에 대한 본질과 철학적 성찰에 물음표를 던지고 있을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찰나의 감정이나 상황에 따라 또 다른 해석과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갱상도 사투리 번역판 ‘애린 왕자’에 이어, 조부모의 발화와 임실과 남원에서 방언 조사 한 것을 바탕으로 번역했다…2024-12-05 19:19

퇴직 후 계획을 세웠다. 하루에 한 번씩 밤하늘의 달과 별을 올려다 보기로 한 것이다. 도시 아파트에선 달과 별을 보지 못하고 지내기 일쑤다. 그러나 시골로 들어오면서 달라졌다. 밤마다 보이는 것은 달과 별이다. 시골의 밤은 고요한 정적이 흘러 달과 별이 더 도드라진다. 앗, 별이 움직인다. 보너스로 별과 같은 비행기가 지나간다. 사람들의 꿈을 안고서. 마당에 앉아 하늘 멍을 하고 있으면 자연과 하나가 되는 교감을 느낀다. 살갗에 머무는 바람의 감촉이 싱그럽다. 거기서 느끼는 호흡으로 자연과 일체감을 느낀다. 인간은 …2024-11-14 20:20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팔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가끔씩 읊조리게 되는 ‘섬집아기’는 아무런 감정 없이 시작했다가도 끝까지 부를 수가 없다. 어느 순간,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짙은 그리움에 목안이 울컥, 가슴이 아려온다. 잘 자라 토닥이던 엄마의 부드러운 손길과 자장자장 고운 노랫가락이 그대로 다가와 쉼이 되고 숨이 된다. ‘오빠 생각’, ‘과수원길’, ‘과꽃’, ‘고향의 봄’, ‘퐁당퐁당’, ‘파란마음 하얀마음’, ‘초록바다…2024-10-31 19:25

기차는 달리고 있었다. 멈출 수 없는 속도로, 목적지 없는 궤도를 따라 끊임없이 질주했다. 나는 그 안에서 수십 년을 보냈다. 그 속도와 압박 속에서 내가 어디로 향하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그저 더 나은 삶과 더 높은 위치를 위해 앞으로 나아갔다. 브레이크 없이 달려온 인생, 마치 그리스 신화 속 시시포스가 산을 오르내리며 바위를 밀어 올리는 것과 같았다. 끝도 없이 반복되는 일과 목표들 속에서 나는 내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지만, 그 의미는 늘 정상에 다다르기 직전에 다시 굴러 내려가 버렸다. 시시포스의 신화는 나와…2024-10-24 1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