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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도시서 만나는 치열한 변화·상상의 확장”

“민주도시서 만나는 치열한 변화·상상의 확장”
현대미술 대축제 72일간 대장정 돌입…미리 만나는 제16회 광주비엔날레
‘변화와 실천’ 주제…43인(팀)으로 역대 가장 밀도 높은 전시장 구성
오월어머니집·운림산방·허백련 등 전남광주 민주 가치·역사 담아
  • 2026. 09.06(일) 18:26
  • 오복 기자
“예술작품 하나가 한 사람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킨다.”

제16회 광주비엔날레 호추니엔 감독은 지하철에서 릴케의 시를 읽으며 그런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광주비엔날레 주제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를 만난 순간 강렬하고 완전한 내면의 변화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한 부분을 마주했다.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가 온전히 개인의 것으로 타인과는 공유되지 않아서다.

호추니엔은 이 부분을 시민들의 연대와 역사적 경험으로 이미 민주주의라는 변화를 경험한 도시 ‘광주’로 가져왔고, 어떻게 개인의 변화를 사회로 확장할수 있는지 보여준다.

광주비엔날레는 관람객에게 ‘변화’에 대한 방향과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서로 다른 변화의 작품을 통해 ‘나의 삶에서 시작된 변화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꿀수 있는지’ 각자만의 해답을 찾을수 있게 작품을 보여줄 뿐이다.


● 제주 화산암 치열한 신체 변화
송진의 보호·경계 사이
골딘+세네비 ‘송진 연못’

지난 4일 개막을 하루 앞두고 프레스투어로 개방된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먼저 1전시실에 들어서면 릴케의 시 ‘너는 네 삶을 바꿔야한다’가 맞이한다.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이 무엇을 얻어가야 하는지 각인하는 순간이다.

제주에서 건너온 커다란 화산암이 첫번째 참여작가로 눈길을 끈다. 단단하고 좀처럼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돌이지만, 화산활동의 순간 강하고 빠르게 녹고, 느리게 굳어와 자신의 신체를 얼마나 치열하게 변화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바로 옆에는 바닥을 뒤덮은 반짝이는 노란 호수가 발길을 사로잡았다. 호박색 물질은 물처럼 부드럽고, 돌처럼 단단해 보였다. 약 2t에 달하는 송진이 바닥으로 흘러넘쳐 거대한 웅덩이를 이룬 골딘+세네비의 ‘송진 연못’이다.

송진은 나무가 상처를 입었을 때 분비해 해충을 쫓고 상처를 덮는 물질임과 동시에 바이오 오일과 디젤, 항공연료로도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다. 오랜 시간 다발성경화증을 앓아온 작가는 이 물질을 통해 신체의 취약성과 치유, 적응을 들여다본다. 이는 자기 몸의 보호와 공격 사이에 흔들린 경계를 담았다.


●신체의 가장 작은 손가락에서 부터 상상의 확장
안젤라 고의 퍼포먼스 /연합뉴스

왼쪽 벽면의 낡은 운동화 한 켤레가 눈에 들어온다. 사사키 켄이 즐겨 신던 컨버스 운동화를 2010년 그린 작품이다. 정작 작가는 왜 하필 이 운동화를 그렸는지 자신도 알지 못한다. 곁에는 3년 뒤 다른 이가 신던 부츠를 그린 작품이 놓였다. 관람객은 이 그림을 보면서 신발을 신고 있는 누군가를 상상하게 된다. 이 운동화는 이후 전시를 위한 작은 예고이기도 하다. 사사키 켄의 회화 60점은 한곳에 모여 있지 않고 전시장 곳곳에 흩어져 있다. 관람객과 가까워졌다 멀어지기를 반복하며 긴 여정을 함께한다.

작품은 전시실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2전시실에서 3전시실로 향하는 다리에 들어서면 안젤라 고의 퍼포먼스가 관람객을 사로잡는다. 하루 네 차례 정해진 시간, 작가가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면 통로였던 다리는 순식간에 무대가 된다. 손가락 하나에서 시작된 변화는 점차 뒤쪽 비엔날레 전경으로 확대되고, 관람객은 자연스럽게 가장 작은 신체의 움직임이 전시장 전체로 퍼지는 변화를 깨닫게 된다.


● 민주화 도시 광주의 역사
200년 운림산방 화맥의 변화
오월어머니집 그림들

3전시실 정중앙 쪽에는 변화의 시간이 지역의 역사와 기억으로 확장된다.

오월어머니집의 그림들 322점은 화려한 색상으로 눈길을 끌지만 가까이 가서 한작품씩 살펴보면 가슴아픈 역사가 마주한다. 직업 화가가 아닌 5·18민주화운동으로 인생이 바뀌어버린 일반 여성들이 직접 그린 이 작품은 2022년부터 주홍 작가와 ‘기억하기’, ‘나를 찾기’, ‘연대하기’를 주제로 이어온 그림 수업의 작업물이다.

화면에는 꽃과 과일, 가족과 함께한 여행처럼 행복했던 순간도 있고 총상을 입은 가족을 병원으로 옮기던 기억, 1980년 5월의 폭력도 함께 놓였다. 과거의 재현을 넘어 한동안 잊고 지냈던 자신을 다시 만나고 개인의 기억을 공동의 역사로 이어가는 또 다른 변화와 실천의 의미를 담았다.

또 다른 한쪽에는 약 200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진도 운림산방의 작품이다.

이는 소치 허련에서 시작해 허형·허건·허림·허문·허진으로 이어진 남종화의 계보를 한자리에서 보여준다. 남도의 맥을 이어온 한 집안의 화맥이 같은 전통 안에서 서로 다른 화풍을 보여주며 자리한다. 세대를 건너며 각자의 시선과 시대를 받아들이고 변화하며 오늘까지 이어지는 부분이 인상깊다.

바로 옆 쪽에 의재 허백련의 삶도 ‘배움이 어떻게 사람과 사회를 바꿀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관람객을 맞는다. 허백련은 1947년 광주농업고등기술학교를 설립해 농사와 차 재배, 역사와 한문, 노동과 수양을 함께 가르쳤다. ‘하늘을 사랑하고, 땅을 사랑하며, 사람을 사랑한다’는 삼애정신이 바탕인 그의 가르침을 변화의 공동체 확장으로 보고 무등산에서 가꾼 춘설차와 차 도구, 서화도 전시장으로 들여왔다. 그림 한 점을 넘어 예술과 교육, 노동과 공동체를 하나의 삶으로 바라봤던 그의 실천을 주목한 작품이다.


●전시장 곳곳 다시 만나는 작품…공간 재배치
골딘+세네비 ‘레고 만보기 조작 장치들’

다섯 개 전시실을 걷다 보면 묘한 기시감이 든다. 앞서 만난 작가의 작품이 뜻밖의 장소에서 다시 나타나기 때문이다.

1전시실에서 거대한 ‘송진 연못’을 선보였던 골딘+세네비는 4곳의 전시장 구석에서 손바닥만 한 레고 장치로 다시 관람객을 만난다. ‘레고 만보기 조작 장치들’은 스마트폰을 등에 메고 등교하는 학생같은 모양새였다. 3만보 이상 걸었다는 표시가 어플리케이션 화면으로 보였다. 스마트폰을 끊임없이 앞뒤로 흔들어 걸음 수를 만들어내는 이 작품은 건강과 의료서비스 이용 자격을 판단하는 데이터가 인간의 실제 몸 대신 숫자에 의존하는 현실을 비틀었다.

어딘가에서는 아픈 몸이 진짜 도움을 기다리는 동안 작은 기계가 대신 열심히 ‘걷는다’는 작품 설명이 AI시대 도움이 필요한 진짜 소외된 사람들을 생각케 했다.

사사키 켄의 그림 역시 전시장 곳곳에서 불쑥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작품 하나를 보고 다음 작가로 이동했지만 또 다시 나타난 변화된 작품은 자연스럽게 이번 비엔날레 주제인 변화를 떠올리게 한다.


●테크노 음악과 기계장치 클럽
재클린 키요미 고크 ‘어긋난 BPM(R로즈 변주곡)’

관람객 스스로 정하는 위치

마지막 5전시실은 지금까지 전시장과는 다르게 통일된 하나의 전시로 구성돼있었다.

재클린 키요미 고크의 ‘어긋난 BPM(R로즈 변주곡)’이 만들어놓은 것은 해체된 클럽에 가까운 공간이다. 테크노 음악소리와 기계장치, 송풍기 등이 뒤엉키고, 축 늘어져 있던 거대한 투명 에어 구조물은 공기를 받아 수축 팽창을 번갈아 한다. 어스름한 조명과 리듬은 익숙한 클럽의 흥분 대신 묘한 긴장감을 전하고, 관람객들은 에어 구조물로 만들어진 길을 걸으며 여러가지 상상을 불러 일으킨다.

고크는 “지속음의 정말 좋은 점은 그 안에서 나만의 자리를 찾을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어떤 소리에 귀를 기울일지, 어디에 서 있을지, 몸으로 어떻게 반응할지는 각자의 몫이다. 작품을 바라보던 관람객이 어느새 작품을 이루는 환경 안에서 스스로 위치를 선택하게 된다.


●케이팝 댄스곡 노랫말로 번역된 작품 AI 번역 詩
강이룬 ‘이미지-시’

마지막 5전시실에서 나오면 출구 공간에 지금까지 본 작품들과 전혀 다른 모습의 작품이 등장한다.

벽면을 가득채운 43인(팀)의 작품들은 한장의 SNS 사진 같은 곳에 짧은 시로 담겨있다. 이번 광주비엔날레의 디자인을 맡은 강이룬의 ‘이미지-시’다. 강이룬은 AI 시스템을 이용해 출품작 이미지마다 한 편의 시를 생성했다. 짧은 한국어와 영어가 뒤섞이지만 서로를 번역하지 않는 케이팝과 댄스곡의 노랫말에서 형식을 가져왔다.

오월어머니의 작품은 ‘벽처럼 굳은 곡소리’, ‘캔버스에 핀 멍울’이 됐다. 약 200년을 이어온 운림산방의 산수는 ‘번호를 단 능선’, ‘표본이 된 산맥’이라는 낯선 시구로 바뀌었다.

모든 시의 마지막은 전시를 마친 관람객에게 다시 한번 메시지를 던진다.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

/오복 기자
오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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