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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반평생 교단에 서서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왔다. 저마다 다른 빛깔을 지닌 아이들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아직 피어나지 않은 꿈을 북돋우는 것이 교사로서의 사명이라 믿었다. 그 시절의 나는 스스로 아이들의 가능성을 알아보는 ‘백락’이라 자부하며 살았다.
그러나 정년을 맞아 교단을 떠난 뒤 지나온 시간을 뒤돌아보니, 마음 한편에 감출 수 없는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공평 하고자 애썼으나 나는 늘 성급했다. 눈에 잘 띄고 반응이 빠른 아이들에게 더 쉽게 마음을 열었고, 그들의 작은 성취에 과분한 칭찬을 보내곤 했다.
정작 내 손길이 절실했던 아이들은 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교실 구석에서 눈을 맞추지 못하던 내성적인 아이들, 느리고 서툴다는 이유로 내 기다림의 밖에 서 있던 아이들의 마음을 나는 얼마나 무심히 지나쳐 왔던가.
교사의 짧은 한마디, 혹은 따뜻한 눈길 하나가 한 아이의 평생을 바쳐 줄 희망의 기둥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조금만 더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귀 기울였다면 달라졌을 수많은 순간이 뒤늦은 후회가 되어 가슴을 파고들었다. 백락을 자처했던 나는 그저 이미 스스로 빛을 내던 아이들만 알아보는 사람이었던 것은 아닌지, 깊은 회한이 남았다. 그늘 속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움트고 있던 여린 싹들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는 자책은 퇴직 후에도 오랫동안 마음의 응어리로 남아 나를 짓눌렀다.
교단을 떠난 후의 시간은 생각보다 공허하고 무의미하게 흘러갔다. 평생을 분주하게 울리던 수업 종소리가 사라진 일상은 낯설기만 했고, 나의 쓸모가 다했다는 상실감이 매일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그러던 중 내 삶에 백락의 의미를 다시금 깊이 새기게 된 계기가 있었다. 규칙적인 생활 대신 목적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한 지인이 내게 말했다.
“선생님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참 따뜻하십니다. 평소 찍어 두신 사진과 적어 놓으신 글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보시면 어떨까요?”
무심히 건넨 짧은 한마디였다. 그러나 그 한마디는 오랫동안 닫혀 있던 내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존재조차 잊고 있던 나의 한 부분을 누군가 먼저 알아봐 준 순간이었다.
나는 다시 카메라를 들었고 펜을 잡았다. 세상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 누군가의 온전한 믿음이 담긴 따뜻한 눈길 하나가 멈춰 있던 한 사람의 마음을 다시 움직이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오늘도 나는 이 늦은 깨달음을 마음에 품고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들여다본다. 화려하게 피어난 꽃보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이름 없는 풀 한 포기 앞에서 오래 걸음을 멈춘다. 성급히 이름 붙이거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보려 한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지난날 교단에서 아이들에게 진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는 길인지도 모른다. 또한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준 그 따뜻한 한마디에 보낼 수 있는 가장 성실한 삶의 대답일 것이다. 비록 그 시절의 아이들에게 온전히 돌려주지 못한 시선이지만, 세상의 낮고 외진 곳을 향해 오래 머무는 것으로 그 부끄러움을 덜어내고자 한다.
인생의 늦은 오후에 이르러서야, 나는 비로소 참다운 백락의 의미를 떠올린다. 그리고 남을 바라보는 눈뿐 아니라 나 자신의 허물을 돌아보는 성찰의 눈도 함께 얻었다. 백락은 명마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아니다. 누군가의 가능성을 대신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그가 스스로 자신의 빛을 발견할 때까지 조용히 곁을 지켜주는 것, 그것이 참된 백락의 마음일 것이다.
<김철수 약력>
▲시인, 수필가
▲광주문인협회 회원
▲사진작가
▲행정학 박사, 전)광주 신암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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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5 (목) 1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