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춘삼월 아니랄까봐 지천으로 진달래꽃(杜鵑花)이 피어난다. 이쯤되면 화전놀이가 벌어질 때다. 보통 꽃놀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 전통은 이미 신라시대로부터 시작됐다. 신라 ‘교남지’(嶠南誌)의 ‘경주 산천조’(권4)에는 신라의 궁인들이 봄놀이를 하며 꽃을 꺾었다는데서 유래하는 ‘화절현’(花折峴)이라는 지명이 나온다. ‘조선왕조실록’ 세조 3년 4월22일의 기록(권7)에는 “…귀가(貴家)의 부인들도 또한 많이 본받아서 장막을 크게 설치하고는 며느리들을 다 모아 호세(豪勢)와 사치를 다퉈 준비하는 것이 매우…2018-03-29 18:53

똑 똑, 봄이 왔어요. 문 밖의 새소리가 지저귀고 방안의 아랫목은 뜨끈해 겨울동안 웅크렸던 노곤한 몸이 살아난다. 이른 아침 햇살이 방 안으로 드리워진 모습 속에 평온한 마음이 드는 건 한옥에서의 하룻밤이 주는 아침선물이다. 주인장 어르신이 내어주시는 아침 밥상에는 남도의 봄이 한가득 올라와 있었다. 올해 봄, 들녘에서 처음 캐셨다는 쑥과 나물로 차려주신 아침밥상은 보약이였다.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보약 같은 밥상을 먹고 난 후, 남도의 봄을 온 몸으로 느끼며 남도의 들녘을 거니는 호사를 누린다. 온갖…2018-03-22 20:01

광주 근대화의 산실 ‘빛고을’ 광주에서 요즘 가장 뜨는 곳이 양림동이다. 양림동은 광주 근대가 싹튼 곳이다. 10여년 전부터 근대 역사마을로 명명되었고, 이젠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 모으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몇 년 사이에 이러저러한 기념관이 세워지고 근현대 거리가 조성됐다. 지난 10일에는 ‘3·1에서 통일로’라는 주제로 광주독립만세운동(광주 3·1만세운동) 재현행사를 했다. 광주 3·1만세운동기념동상(광주수피아여자고등학교내)에서 시작하여 양림오거리를 지나 부동교까지 만세행진을 하는데 여기저기서 사진을…2018-03-15 18:42

“이제 끝났구나.” 자라는 내내 원하며 꿈꾸었던 대학 입학에 실패했을 때, 원하지 않은 질병에 걸렸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을 때, 이번엔 반드시 될 거라 믿었던 취업에서 낙방되었을 때, 마음 속 깊이 믿고 의지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했을 때, 나는 이제 끝났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이 온통 잿빛이 된 것 같고, 울음이 울컥울컥 치솟는다. 평생을 열심히 일했던 일터에서 은퇴를 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젊은 시절, 일처리 능력이 탁월하다는 소리를 들었던 사람이나 듣지 못했던 사람이나, 얼굴이 매우 고왔던 사람이나 평…2018-03-08 18:30

당신의 청빈한 삶과 바람처럼 그 누구 한사람의 수고로움도 끼치지 않으시고 당신 손수 병원침대에 눕자마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생전에 뵙던 그 모습보다 더 밝고 환한 모습이셨던 목사님! 분명 천국에서는 큰 잔치가 열린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목사님의 얼굴이 아기처럼 뽀얗게 빛났던 것이 아닌지요. 항상 힘이 넘치시며, 당당하신 그 모습과 그 호령소리를 다시는 뵈올 수 없고, 들을 수 없다는 슬픔이 우리 모두의 넋을 잃게 합니다. 지난 12일 향년 83세로 타계한 방철호 목사에 대한 조사…2018-02-18 18:17

광주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작년에는 광주 5·18민주화운동을 외부인의 시각으로 조명한 영화 ‘택시운전사’로, 또 며칠 전에는 5·18광주민주화운동 기간 동안 계엄군이 비무장상태의 광주시민들을 향해 헬기사격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원회는 당시 시민을 향한 군의 헬기사격을 입증하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특조위는 “5월21일부터 계엄사령부는 문서 또는 구두로 수차례에 걸쳐 헬기 사격을 지시했으며, 인적이 드문 조선대 뒤편 절개지에 AH-1J 코브라 헬기 벌컨포 위협사격을 …2018-02-08 18:31

“어느 마을에 오빠와 여동생이 살았어요. 둘은 비슷한 데가 하나도 없었어요. 모든 게 딴판이었죠. 동생은 자기 방에 틀어박혀 책을 읽거나 공상을 했어요. 오빠는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공놀이를 하고, 뒹굴며 뛰어놀았고요. 밤이면 오빠는 곤히 잠들었지만, 동생은 말똥말똥 깨어 있었죠. 밤에 들려오는 모든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이따금 오빠가 살금살금 다가와 동생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어요. 동생은 깜깜한 밤을 너무너무 무서워했거든요.”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 ‘터널’에 등장하는 남매는 닮은 게 하나도…2018-01-25 18:54

올해 처음으로 눈다운 눈이 내려 갈까 말까 여러 번 고민되었다. 머리로는 고민하는데 내 핸들은 빛고을시민문화관으로 가고 있었다. 눈길을 뚫고 간 그 자리는 정말 감동 그 자체였다. 가지 않았으면 그 설레임과 가슴벅참을 느끼지 못했으리라. 하마터면 아쉬웠을 자리였다. 양손을 우아하고 절도 있게 사용하면서 섬세하고도 역동적인 성시연의 지휘는 관객 모두에게 긴장과 행복 그리고 아름다움을 선물해주었다. 광주문화재단이 지난 9일 밤 8시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서울 예술의 전당 신년음악회를 영상으로 생중계하는 연주회에서…2018-01-18 18:46

여성숙 선생은 평생동안 폐결핵환자를 돌보아온, 한국의 여성 슈바이처다. 지금 100세다. 얼마 전 100세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보여주셨다. 휠체어에 타 거동은 불편하시지만, 목소리는 또릿 또릿했다. 2년 전 찾아뵈었을 때 선생은 묵묵히 선을 베푸는 이들을 존경한다고 하셨다. 대부분의 인터뷰는 거절하며 본인에 대한 이야기는 잘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기억이 나질 않아” 하면서 자료가 충분하지 않으나 신문기사 스크랩 해 놓은 것과 사진 몇장을 꺼내어 보여주셨다. 여선생은 정말 훌륭한 분이다. 2만 …2018-01-01 20:32

배우가 되어 무대에 선다. 이건 내게 꿈같은 일이었다. 그 꿈같은 일이 버젓이 벌어졌다. 꿈에 나타난 일이 아니고 백주대낮에 이뤄졌다. 얼씨구, 좋다. 절로 추임새가 나올 지경이다. 꿈이 꿈에 머물지 않고 현실화된 것은 광주문화재단 빛고을시민문화관의 공연장상주단체운영사업 일환으로 시민대상 퍼블릭프로그램-시민연극 ‘나도 배우다!’에 참가함으로써 이뤄졌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어 늦가을 정취가 한껏 익어갈 무렵 소위, 시민배우들이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모였다. 16-18명 정도였던 것 같다. 현진건의 단편선을 읽어…2017-12-21 19:52

얼마 전 극단 ‘산’이 창작한 연극 ‘소’를 관람했다. 연극 ‘소’는 1996년 대홍수로 북한에서 소 한 마리가 한강 하류로 떠내려 온 실제 사건을 코믹하게 풀어낸 공연이다. 오랫동안 분단국가로 살면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인데, 어떻게 해야 평화를 유지하면서 분단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시대정신을 잔잔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남북 관계를 풍자와 해학으로 다루고 있어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민통선내의 마을 ‘우도리’는 소가 많은 마을이다. 5년전 우연히 들어온 ‘왕소’를 키우게 되며 집집마다 소 한마리…2017-12-10 19:13

“왜 낮이 끝나야 하나요?” 아이가 엄마에게 물었어요. 낮이 끝나는 게 너무 슬펐거든요. 친구들과 더 많이 놀 수 없으니까요. 날이 서서히 저물기 시작하면 친구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와야 하니까요. “낮이 왜 끝나야 하냐고? 그래야 밤이 올 수 있거든. 저길 보렴, 밤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지?” 엄마가 창밖을 가리키며 아이에게 말했어요. 저기 배나무 뒤, 어두워지는 하늘에서 희미한 은빛 달이 보였어요. “밤은 달과 별, 그리고 어둠과 함께 너를 위해 꿈을 준비하고 있단다.” 엄마가 아이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어요…2017-11-30 18:27

얼마 전 군함도를 다녀왔다. 오월 어머니집 회원들과 함께 후쿠오카와 키타 큐슈 역사탐방을 하면서 특별히 군함도와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을 돌아보게 되었다. ‘군함도’는 일본말로 하시마(端島)다.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의 한이 서린 섬이다. 멀리서 보면 군함 같다고 해서 ‘군함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많은 조선인들이 강제 징용되어 석탄을 캤다. 이후 석유로의 에너지 정책 변화에 따라 1974년 1월 15일에 폐광되었다. 한 때 5천여명이 거주하던 섬은 폐광과 함께 빈섬이 되었다. 조그마한 섬 위에 고층건물…2017-11-23 18:46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훌륭한 사람에게는 거의 훌륭한 어머니가 있었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율곡 이이의 어머니 신사임당, 남효온의 어머니, 정여창의 어머니 최씨, 이황의 어머니 박씨 등등 이루 다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훌륭한 어머니가 뒤에 버티고 있었다. 이처럼 어머니의 훌륭한 면모는 문학작품에서도 예외없이 다룬다. 러시아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창시자 막심 고리끼는 자신의 대표작 에서 어머니의 위대성을 표현하고 있다. 고리끼의 는 러시아 문학사에서도 하나의 큰 전환점을 이룬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2017-11-16 19:36

선한 사마리아 사람 포사이드 선교사(Wiley Hamilton Forsythe·1873-1918)를 소개하겠다. 1904년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 의료 선교사로 와서 전라북도 전주에서 순회 진료를 하며 고아원을 운영하다가 1905년 어느 날 밤 괴한에게 귀가 잘리고 두개골이 깨지고 얼굴과 목에 큰 상처를 입었다. 미국으로 가서 치료를 받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목포에서 의료 선교하고 있는데, 광주에서 기독병원 원장이었던 친구 윌슨선교사가 오웬(Clement Carrington Owen)선교사의 몸 상태를 보고 목포에 있는 닥터 포사이드에게 도움을 청하는 전보를…2017-11-09 18: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