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가졌던가 무엇을 잃었던가 아무것도 가진 게 없고 아무것도 잃은 것 없는 무엇을 더 가지려고 그리 발버둥치는 건가 얻지도 잃지도 않았으니 빈손으로 간들 그 무엇이 손해란 말인가 ▲문학세대 시 부분 등단(2009) ▲한행문학 행시문학상 ▲전국행시백일장 최우수 작가상 수상 ▲광주문인협회 …2025-01-06 18:50

무등산 어머니 품과 같은 아늑한 산 그 속에 원효의 이야기가 전해온다. 원효의 이야기에 빗대어 얘기할 수 있도록 편안함을 갖춘 무등 무등 무등산 모두에게 앞과 뒤 높음과 낮음이 없다는 무등 얼마나 좋은 말인지 모른다 모두가 죽으면 한 줌 흙으로 돌아가니 무등이 아니고 무어란 말인가 원효대사의 이…2025-01-06 18:50

겨우내 봉인해 둔 질항아리 뚜껑을 연다 깊은 속 잴 수 없는 거먕빛 맑은 우물 퍼내도 마르지 않는 엄마 하늘 거기 있다 ▲‘문예시대’ 신인문학상 시 ▲‘시조시학’ 신인작품상 시조 ▲해남 시조백일장 대상 ▲국세가족 문예전 시조 부문 은상2025-01-06 18:50

속속들이 가을이 거리에 들어왔다. 가로수 은행잎 우수수 앞다투어 가벼운 녀석들은 휘몰아쳐 돌고 흩어진 녀석들은 자동차에 올라앉아 가을을 실은 차도, 차에 올라탄 가을도 영문도 모른 채, 저만치 저 멀리 멀어져갔다. 한참 후 낯선 거리 어느 한적한 곳에 내려앉았다. 그곳에도 몸을 털어내고 있는 나무가 있…2025-01-06 18:50

아련히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먼 듯, 가까운 듯 부드러운 바람에 포근히 안겨 있었다. “선생님 사랑해요” 낭랑한 그 목소리에 깜짝 놀라 깨어났다. 어두운 방, 창호지를 바른 문이 희부옇게 보인다. 아직은 컴컴한 밤. 뒷담 쪽으로 난 방문을 열어보니 사위가 조용하다. 비몽사몽, 꿈이었을까. 달려가…2024-12-23 19:29

바람에 떠밀리던 낙엽들이 구석진 곳에 옹기종기 모여 어깨를 서로 주물러주며 여름날에 고생이 많았노라고 오그라든 몸을 서로 감싸주며 추운 날에도 이렇게 온기 나누자고 다른 데로 쓸려나지 말고 뿌리께에 함께 있자고 바스락 톡톡 심줄 돋은 잎사귀 토닥여 탁본 떠가던 메마른 바람 나란히 앉아 …2024-12-23 19:29

나무에 무성히 매달려 있던 가을이 떨어진다. 대지를 멋있게 장식하던 가을의 정령들이 떨어진다. 떨어진 가을들이 거센 바람에 휘날려 정처없이 굴러간다. 어디로 가니 얘들아. 불러도 대답 없이 사랑하는 내 친구 가을들이 훠이훠이 창공 드높이 날아간다 연처럼 날아서 가없는 푸르름 속으로 사라진다. 나…2024-12-23 19:29

양림 산마루에 올라서면 반짝이는 별들 수북수북 쌓여있다 죄없이 매달린 그 별들 촘촘히 박힌 돌판 읽는다 백 년 전 파란 눈의 천사들 개똥밭에 집짓고 나무 심었다 굶은 자 밥 먹이고 감긴 눈 뜨게 했다 문드러진 손발 깨끗해지고 움막은 노래 부르기 시작했다 나 죽어 너 살리는 일 죽어도 다시…2024-12-23 19:29

애초 태어나 고향 하나 지키려 욕심 했다 몸 자라고 물질 쌓이니 비바람들 침습했다 정 맞은 부피 채우려 바깥세상 쏘다녔다 세상은 달라는 것 탐나는 것 많고 많았다 낮 밤 새어 쏘다녀도 빈터 많고 지쳐갔다 어느 날 귀성열차 기대어 창밖 별들 세어 봤다. ▲‘현대시조’ 등단 ▲광주문학상 수상 ▲…2024-12-09 19:50

소나기 치듯 잎비로 내린 낙엽 위 별빛이 차다 낙엽은 스산한 가을바람 켜며 찬 별 물고 누구에게 가고 싶어 저리 바삐 서둘러 굴러가고 있을까 이 밤 한 잎 낙엽 되어 별에게 길을 물으며 은사시나무 같은 너에게 가고 싶구나 찬 바람 쓸어 가듯 맨 발로 달빛 밟으며 낙엽 구르는 소리로 ▲‘한국…2024-12-09 19:50

현관에 소리 없이 앉아 10년을 하루같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운동화 오늘도 묵묵히 긴 목을 빼고 있다 갑작스런 하늘의 부르심에 맨발로 따라나선 길 그 길에 마지막 이별이 될줄이야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길 떠난 사람 속절없는 날들을 동반자가 되어 버팀목으로 파수꾼으로 그대 없는 빈…2024-12-09 19:50

이웃집 할머니와는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가깝게 살았다. 인터넷을 통해 살기 좋은 곳을 찾다가 우리 마을에 오신 분이다. 열려진 대문 사이로 토방의 많은 신발들을 보면서 왠지 든든했다. 저 신발들은 삶의 궤도를 이탈하지 않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리며 뒤꿈치에 힘을 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뒤축이 닳아진 신발로 덜…2024-12-09 19:50

기촌(면앙정) 선생의 학덕에 부쳐 企村學德高揚名 기촌학덕고양명 賢弟雲集滿頌聲 현제운집만송성 四百年前極美風 사백년전극미풍 今天再宴顯古情 금천재연현고정 何人歸村閑居享 하인귀촌한거향 遠近各處諸儒迎 원근각처제유영 華官如夢文成久 화관여몽문성구 俛仰懷能官文盈 면앙회능관문영 기촌선생 …2024-11-25 19:22

새로 놓은 탁자가 덜컹덜컹 흔들린다 눈으로 더듬어도 만질 수 없던 깊이 종잇장 두툼하게 접어 기운 쪽을 괴어본다 모로 누워도 편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바닥 탁자 위에 엎지른 물 낮은 쪽으로 흐른다 마음이 덜컥 꺼지면 이 깊이만큼 뭘 괴야할까 라일락꽃 만발하던 보랏빛 봄날일까 향기 없이 붉…2024-11-25 19:22

나는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한 백만 원쯤 생기기도 하는 생활을 사랑한다. 그 돈으로 산속 외딴집을 일주일만 빌리고 싶다. 그러면 나는 오렌지 빛 노을을 등지고 천천히 날아 잠들 곳을 찾아 숲으로 드는 새들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해 질 녘을 사랑할 것이고 이내 검푸러진 하늘에 반짝이며 나타나는 별을 헤는 …2024-11-25 1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