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성은 문학에 조금만 관심을 두어도 귀에 익숙한데 햄릿성이 실제로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햄릿성을 보기 위해 그 먼 거리를 비행기와 버스를 번갈아 타고 찾아오곤 한다. 그것도 칙칙한 비를 맞아가며 현대의 관광객들은 세익스피어 ‘햄릿’에서 햄릿성의 유령에 대한 환상…2024-07-22 19:34

샛별이 나를 반깁니다 가까이서 멀리서 새벽이 꿈틀거리는 소리가 아련히 들려오고 삼삼오오 일터로 나서는 사람들의 검은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새벽을 일으켜 세우고 있습니다 이른 새벽 돌계단 틈새로 여린 풀잎 위에 이슬이 머금어 목숨의 소중함을 몸짓 하나로 이 새벽을 또 일으켜 세우고 …2024-07-22 19:34

햇볕 한 장 곱게 잘라 방에 깔아 주시려고 아내는 유리창을 닦고 또 닦고 있네 올겨울 따뜻하겠네 저기 봄이 걸어오네. 밤에는 덤으로 달빛도 한 장 깔리네 하얀 이불 걷어차도 파란 이불 덮어주니 올여름 시원하겠네 벌써 가을 달려오네. ▲‘열린시학’ 등단 ▲시집 : ‘가면의 나라’, ‘나 지…2024-07-22 19:34

하얀 눈발 속에서 눈부신 매화꽃이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다 긴 겨울 칼바람도 캄캄한 긴 밤도 참아내고 따사한 햇살을 맞으며 수줍은 모습을 드러낸다 그 옛날 숨겨둔 아픔의 전설을 전하듯 수많은 밤과 낮의 사연을 조용히 이야길 시작한다 세찬 눈보라가 고마운 스승이었다고 오늘의 예쁜 꽃을 맺는데 …2024-07-08 20:00

무등이 수놓은 풋풋한 산자락에 사방팔방을 선물처럼 식탁보 깔았다네 민주 등불 걸어놓은 청정 자연 빛 밝은 고을이여 그리움도 가득가득 기다림도 가득가득 하늘이 내린 터전 내가 자란 빛고을 광주 옹기종기 모여 사는 우리 이웃은 따뜻하다네 앞서거니 뒤서거니 수북한 밥 한 사발 사방의 꽃향기는 만국기처럼 펄…2024-07-08 20:00

광복절이 방학 중이라 학생들에게 ‘8.15 광복’ 이야기를 미리 해주다가 이육사 문학관도 소개했다. 도산서원과 가까운 문학관 입구에서 청포도가 싱그럽게 익어갈 거라고 하니, 장애 학생들의 눈빛이 포도알처럼 빛났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중략…아이…2024-07-08 20:00

지휘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산의 객석은 꽉 차 있다 무수한 나뭇가지들 사이사이 플래시 비쳐 들듯 은총 같은 햇살들이 내리쬐고 일체의 오욕 덩어리 오장육부를 씻어내는 듯한 계곡물 합창 소리 코러스로 따라 드는 배쫑배쫑 새소리 청량한 숲의 화음에 당나귀 귀 빨대처럼 꽂고 차마 객석을 빠져나가지 …2024-07-08 20:00

오월은 참 멋있다 봄바람도 열정의 햇살도 다 익은 찔레꽃을 더듬는다 늦사랑 툭 터놓고 흔들어 대니 벌과 나비도 덩달아 춤을 춘다 남사스럽다며 고개 돌리던 할배가 어느 사이 두 다리 쭉 뻗고 오수를 즐긴다 하늘은 둥글고 들꽃 향기가 온몸을 내미니 첫날밤이 아닌가 ▲아시아서석문학 등단 ▲아시…2024-06-24 20:09

눈 비비고 고개 들어 창밖을 보면 꽃밭에서 노란 얼굴 파란 얼굴 빨간 얼굴 살랑살랑 미소 짓고 기지개 켜고 고개 젖혀 창밖을 보면 언덕 위에 서성대는 아지랑이 이제 눈을 더 크게 뜨고 창밖을 보면 더 파랗게 된 하늘이 우리의 꿈을 조심조심 퍼 올리고 언제나 새로운 세상 창밖을 보면 파도처…2024-06-24 20:09

오랫동안 병고(病苦)에 시달리던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그 친구는 작년 말까지만 해도 가끔 나에게 전화를 했고, 한 번 전화하면 40-50분씩 계속 통화를 했기에 귀찮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차츰 그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친구는 암 수술 후 요양병원에 입원했는데, “처음에는 자주 찾아오던 가족들이 이제는…2024-06-24 20:09

고뫼 마을 경로당에 자칭 타짜 모였다 바닥에 엎디어진 패 하나씩 까뒤집어 차례 먼저 정하고 오늘은 홍단이든 청단이든 기언치 해 볼 요량으로 각오가 비장하다 마치 한 살림 거덜 낼 노름꾼처럼 아침까지 아프던 폴뚝은 가벼이 개안허고 복대 찬 허리는 암시랑토 안해 끌러불고 구리 동전 하나에 고기압과…2024-06-24 20:09

사과를 깎다가 손을 베었다. 대단찮은 상처라서 금방 피가 멎었는데 핏자국을 닦노라 물을 채운 그릇에 손을 담그자 다시 피가 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실오라기처럼 가늘게 흐르다가 물과 섞이면서 좀 더 엷고 부드럽게 퍼져 나가며 점차 물을 분홍빛으로 물들여 가는 과정이 하도 은근하고 아름다워 지혈할 생각도 잊고 …2024-06-10 20:18

달빛 어리는 멀구슬꽃향기를 듣다 초여름밤 산책은 아득아득하다 어디서 이 몸과 마음을 사로잡혔었나 먼 바다 그 섬의 그리운 빗돌 곁 너는 노래했고 나는 춤 출 수 없었다 아득아득한 멀구슬꽃향기가 들린다 유월이면 도지는 병 분명 유월이다 너는 로버트 번즈, 붉은 장미를 읽고 나는 보릿대 들불 연기만 바라…2024-06-10 20:18

고적한 고향 집 대문 열고 들어서면 매혹적인 향기로 맞아주는 하얀 미소 눈부신 햇살 받아 별빛처럼 소곤소곤 작은 목소리로 전해오는 다정한 인사 단정한 쪽머리 고운 자태로 마루에 앉아 미소 짓던 어머니 그 따스한 품속같이 유년의 추억 아련히 불러와 그리움 한 다발 가슴에 안긴다 ▲‘순…2024-06-10 20:18

나무가 되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일 년에 한 번씩 죽어가는 풀이 아니라 내 이름을 걸고 뺨 붉은 사과처럼 멋진 열매를 맺고 세상 첫날에서 마지막 날까지 죽지 않는 나무가 되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세상 사람들은 나를 보고 풀이라 해도 스스로 키 작은 나무였으니 나무도 풀도 결국은 한 뿌리였지 않았던가 …2024-06-10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