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놓은 탁자가 덜컹덜컹 흔들린다 눈으로 더듬어도 만질 수 없던 깊이 종잇장 두툼하게 접어 기운 쪽을 괴어본다 모로 누워도 편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바닥 탁자 위에 엎지른 물 낮은 쪽으로 흐른다 마음이 덜컥 꺼지면 이 깊이만큼 뭘 괴야할까 라일락꽃 만발하던 보랏빛 봄날일까 향기 없이 붉…2024-11-25 19:22

나는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한 백만 원쯤 생기기도 하는 생활을 사랑한다. 그 돈으로 산속 외딴집을 일주일만 빌리고 싶다. 그러면 나는 오렌지 빛 노을을 등지고 천천히 날아 잠들 곳을 찾아 숲으로 드는 새들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해 질 녘을 사랑할 것이고 이내 검푸러진 하늘에 반짝이며 나타나는 별을 헤는 …2024-11-25 19:22

장미꽃이 고개를 든다 깊숙이 숙인 이마 위에 서늘한 안개가 앉아있다 뿌옇게 탈색된 안개의 혀끝에 달랑 장미꽃 한 송이 거칠게 꽂혀있다 장미꽃들의 행방을 찾았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아직 여름이 한창인데 정원사에게만은 장미들은 한 송이의 꽃일 뿐 얼굴이 아니다 계절을 타지 않는 정원사는 아직…2024-11-25 19:22

생일 선물로 회사 사장이 컵 1쌍을 주셨다. 찬장 한 켠에 간직했다. 퇴직하고 부부가 차도 마시고 마주하고 지난날 추억도 이야기했다. 컵에는 빨간 장미꽃 무늬에 벌과 나비가 꿀을 먹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오늘은 자기가 커피를 타 줘! 알았어. 내가 타 줄게. “나는 적당한 물을 못 맞추겠어.” 엄살 …2024-11-11 19:30

건물 외벽을 기며 균열이 생긴 틈을 메우는 사내가 거미처럼 내려오고 있었다, 틈이 생긴 곳 조목조목 진단하며 기계처럼 움직이는 공구들 실리콘 접착제 그가 믿고 의지하는 가족 같은 존재다 쏟아지는 햇살 온몸으로 받아내며 긴장의 족쇄가 가슴 조여도 밧줄이 가족의 밥줄이기에, 두려움이야 견딜 …2024-11-11 19:30

꽃 속에 푸르름이 춤추는 동적골 계곡물 금강송은 세월을 자랑하고 자작나무는 하늘로 키재기를 하며 오른다 산새들은 신나서 식구들 늘었다고 재잘거린다 벚꽃은 사랑의 씨앗 버찌가 주렁주렁 산새들 꿀맛이다 산벚꽃들 솟아올라 숨바꼭질한다 하늘빛 담은 개울 속 피라미가 활기차게 이리저리 헤엄친다…2024-11-11 19:30

연세가 많은 분의 등을 밀어 드렸다. 흘깃 가슴팍을 보니 돌보지 않은 무덤처럼 젖가슴이 낮게 내려앉았다. 건포도 같은 젖꼭지가 생의 꼬투리인양 달려있다. 긴 여정의 마침표 같기도 하고 욕망의 마지막 징표로도 보였다. 고개 숙인 이삭 같은 모습에서 순간 꽃의 의미가 다가왔다. 이게 바로 ‘이삭꽃’이구나! …2024-11-11 19:30

거울에 비친 얼굴 얼기설기 이마주름 온갖 힘을 기울여서 살아온 그 눈가에 지친 몸 세월의 매듭 빗장 풀고 지나간다 바리캉은 윙윙대고, 가위소리 사각대고 윤기 없는 머리카락 기우는 저물녘에 침잠한 침묵 속으로 맥 못 추고 떨어진다 지나온 갇힌 시절 허청허청 지나가고 불후不朽의 옛 모습이 거울 …2024-10-28 19:52

기분이다 ! 와이셔츠 단추를 푼 사내 연거푸 술을 채워요 갈비뼈 속에 숨어있던 기분이 튀어나와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려요 - 오늘은 내가 쏜다 와, 하는 함성과 함께 머리 위로 나비떼가 날아다녀요 이 꽃 저 꽃 빨고 다녀요 카드를 호기롭게 쓱 - 긋고 흔들리는 골목으로 사내가 들어가요 그제…2024-10-28 19:52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핀 게 무슨 좋은 일 있니?” 친구가 내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렇게 보여? 방금 전에 천사들을 만나고 와서 그런가?” 문득 친구와 만나기 바로 전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눈은 반짝 귀는 쫑긋 정말 좋아요. 하나 둘 셋 넷 다시 만나요. 빵빵!” “배꼽 손 인사…2024-10-28 19:52

손바닥에 차씨 하나를 올려놓고 한 생에 스며있는 향기를 따라가 본다 꽃에서 씨로 만나기까지 생의 협곡에서 맴돌고 있는 묵음들 낮에는 햇살에 밤에는 어둠을 밝힌 달빛이 삭혀왔던 억장을 기록하고 있다 그 속에는 어머니가 있었다 봉채함에 차씨를 받은 날부터 윽박지르는 칼바람에도 슬픔을 건너 둥지를…2024-10-28 19:52

오늘도 많은 이야기가 오르고 내린다 모든 것들이 그곳에 있고 먹고살기 위해 꿈을 찾아 사람들은 오른다 숱한 살얼음판 같은 파노라마가 반복되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꿈과 대학을 가기 위해서 민주화의 시대, 여의도의 세찬 바람길에서 막다른 절박한 몸을 안고서 이제 문단의 일을 맡아 기차를 탔다 …2024-10-14 19:25

깊숙이 나무로 둘러싸인 산사에 가면 맑은 피가 돌고 가슴은 기도로 열려있는 길이 될까 경내에서 떠 마신 감로수 한 사발 입술은 영원히 다물어도 말이 되어 나오고 동행한 바람도 허전하고 쓸쓸한지 후미진 길목에 눈 부릅뜬 가로등도 애처로이 호소하네 떨어져 누운 나뭇잎들만 스산한 바람 되어 …2024-10-14 19:25

얼마 전, 정부에서는 생활과 관련된 물가를 발표하였다. 무슨 품목은 어느 지역이 비싸고, 어느 품목은 어디가 싼가 하는 지역별 비교 방식이었다. 여러 가지 품목들 가운데서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짜장면’이었는데, 비싼 지역과 싼 지역의 가격 차이가 제법 났다. 내가 짜장면을 처음 먹어 본 때는 고향에 오…2024-10-14 19:25

언제일까 내 맘속에 들어온 차가운 금속 덩어리 더하고 빼기를 계속하는 기계적 사랑 그리움 저장하고 미움 지워버린 촘촘한 사랑보다 헐렁한 사랑이 그립다 수많은 새들이 떠밀려 가버린 허연 이 하루 눈물이다 ▲현대문예 등단 ▲백석시창작 회장 ▲현대문예 문학상, 모란 문학상 수상 ▲광주문인협회…2024-10-14 19:25